연예인급 외모로 너무 예쁘다고 알려진 이 수녀님의 정체

(인터뷰) 영화 ‘샤인’의 장선 배우를 만나다

장혜령 기자 승인 2024.08.15 01:01 | 최종 수정 2024.08.15 01:03 의견 0
배우 장선 - 인스타그램 @sunny._jang
배우 장선 - 인스타그램 @sunny._jang

8월 9일 광화문의 카페에서 <샤인>의 라파엘라 수녀 역의 배우 장선을 만났다. 영화 <샤인>은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예선(장해금)이 라파엘라 수녀(장선)와 스텔라 수녀(정은경)의 돌봄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다, 자신의 분신 같은 새별(송지온)을 만나 아픔까지 치유하게 되는 따뜻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기쁨, 이별의 과정을 외로움이라는 감정 안에서 천천히 바라보는 작품이다. 제목 ‘샤인’이란 말처럼 반짝이는 윤슬 같고 따뜻한 마음이 피어오르는 영화다.

장선은 이승원 감독의 2017년 <소통과 거짓말>로 데뷔했다. 한국 영화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 연기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대체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걸까. 데뷔작에서 압도하는 카메라 장악력을 펼치던 장선은 박석영 감독의 <바람의 언덕>에서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엄마와 만나게 되는 딸 한희를 연기했다. 이후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에서 초등학생 딸을 둔 억척스러운 엄마 경희를 맡았다. <샤인>에서는 박석영 감독과 재회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라파엘라 수녀로 변신했다.

작품마다 전작이 생각나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장선 본연의 모습과 직업 배우로서의 철학, <샤인>의 비하인드 등 다채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캐릭터로 다가가는 배우되고 파

배우 장선 - 눈컴퍼니 제공

Q. <바람의 언덕> 이후 박석영 감독, 정은경 배우와 재회했다. 전작에서 정은경과 모녀 관계였고, <샤인>에서는 선후배 관계로 설정되어 친밀한 사이로 등장한다. <샤인>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먼저 제안해 주신 건 <샤인>이다. 그때 제가 느낀 <샤인>은 지금과는 다른 결의 이야기였지만 수녀 역할이 같았다. 감독님에게 힘든 일이 생겨 작품이 지연되고 있었고, 다른 작품을 해보자 했던 게 <바람의 언덕>이었다.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주셨고, 그때 은경 선배와 처음 만났다. (오래 걸렸지만) 감독님이 모든 약속을 지켜주신 거다.

<바람의 언덕> 때는 속마음을 완벽히 털어놓고 대화하는 장면이 많지 않았다. 서로 서먹한 관계를 보여줘야 해서 숙소도 일부로 따로 지나면서 캐릭터의 상황에 몰입했었다. <샤인>에서는 오히려 함께 숙소를 쓰면서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했고 더 돈독해졌다. <바람의 언덕> 때 전국으로 GV를 꽤 오래 다니면서 사적으로 친해지기도 했고 애틋한 마음이 커진 상태였다. 엄마, 선배, 스승 같은 관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Q. <샤인>의 또 다른 배우 장해금, 송지온과 호흡은 어땠나.

“해금이는 <바람의 언덕> 중 기차 장면에서 잠시 나오기도 했고, 단편 <너의 오름> 때도 함께 해서 안면만 있는 사이였다. 이번에 본격적인 호흡은 처음 맞추어 봤다. 해금이가 맡은 예선은 할머니를 잃고 세상과 단절하려는 아이다. 현장에서도 예선이처럼 어른스럽고 아역 배우들을 리드하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아역이란 생각보다 동료 배우로 느낌이 강했다. 실제 어릴 때부터 경력이 화려한 배우다. 촬영 때는 고1이었고 지금은 고3이다.

다 함께 제주에서 생활해서 편하게 즉흥 연기가 가능했다. 지온이는 원래 대사가 없는 비전문 배우였다. (신나게 놀다가) 슛 들어가면 말하지 않기를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게 잘되지 않더라. (웃음) 그래서 지온이가 그 상황에서 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방향을 만들고 대사와 상황의 자유를 주었다. 그랬더니 영화와 실제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재미있는 상황이 생겼다.

학생 역할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즉흥연기를 권했다. 수녀님과 신부님이 나누는 대화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했고, 아이들은 즉흥연기를 하면서 독특한 모습이 그려졌다. 즉흥 연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해진 대사와의 융합이 마법처럼 연결되었다. 어려웠지만 좋은 자극을 받았다”

제주도 한 달 많은 배움 가져

배우 장선 - 눈컴퍼니 제공

Q. 제주도에서 촬영하며 겨울과 여름의 계절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바람, 빛, 바다의 공기까지 스크린에 스며들어 아름다운 영상이 담겼다 .

“겨울은 일주일, 여름은 한 달 정도 보냈다. 벌레들도 기억나고, 무엇보다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인상적이었다. 유난히 구름, 햇살, 비 등 날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계곡에서 오카리나를 부는 장면에서 약속이나 한 듯 빗방울이 떨어졌고, 다음 장면인 새별이가 성당에 처음 올 때 비가 오는 장면과 연결되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Q. 영화 속에서는 혼자가 된 예선, 버려진 새별이 등장한다. 종교인이야말로 홀로 신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수녀 라파엘라의 전사가 궁금하다.

“죽을 때까지 수녀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종신서원’을 하고 정식 수녀가 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리는 거로 안다. 일종의 수련 과정을 거치는 거다. 이 사람이 수녀로 살아갈 그릇인지, 속세를 떠날 수 있는지, 감정적으로 주변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지 등등. 긴 시간 지켜보는 거다.

라파엘라는 사연이 많은 인물이다. 상황에 감정이 쉽게 동요하고 여려서 주변 수녀들이 걱정이 많은 수녀다. 그래서 스텔라(정은경)에게 거의 맡겨진 상황이다. 과거 두 사람은 인연이 있기도 했다. 라파엘라 어머니가 아프다 돌아가셨는데 스텔라가 임종을 봐 주기도 했고 라파엘라를 돌봐주기도 했었다”

Q. 영화의 주요 키워드는 ‘돌봄’이다. 소재를 환자, 아이, 그리고 인간으로 확대하는 다리 같은 존재가 라파엘라다. 캐릭터를 접하고 다가가는 방법을 듣고 싶다.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 ‘장선’을 지우려 노력한다. 그 인물 자체로 그 세계에 있고 싶다. 인물의 삶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커진다. 어떤 인물인지, 어떤 식으로 말하고, 걸을지 다양하게 상상하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전사를 디테일하게 알아내기도 하고, 레퍼런스도 참고해 보기도 한다. 대본을 자세히 읽으면서 답을 찾으려 분투한다. 때로는 낯선 사람의 SNS를 훑어보면서 그 인물이 아닐까 저만의 해석을 덧붙여본다. 캐릭터 준비를 철저히 해서 가지만 막상 현장 가서는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추면서 달라지기도 한다”

Q. 최근에는 아이를 돌보는 어른을 자주 맡았다. <비밀의 언덕>에서 젓갈 장사하는 당찬 엄마 ‘경희’도 인상적이었다. <샤인>에서는 예선의 언니 혹은 이모, 엄마 같은 ‘라파엘라’가 추운 겨울에 만난 따뜻한 햇살처럼 느껴졌다. 다채로운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비밀의 언덕>의 경우는 이지은 감독님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들어 간 작품답게 각자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저희 엄마도 반장이 된 딸에게 경희처럼 바빠서 활동 못 할 것 같으니, 반장 안 하면 안 되냐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경희는 나름대로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었고 열심히 뭐든 해보지만 버겁기도 한 어린 엄마를 연기하려고 했다.

<샤인>의 라파엘라는 처음과 끝의 얼굴이 달라지길 바랐다. 감정적인 장면도 오히려 많이 배제하면서 인물을 구축해 갔다. 감독님이 편집본을 배우, 스태프들에게 보여주시면서 다듬어가는 스타일인데 얼굴 풀샷을 빼는 게 어떠냐고 제안 드렸다.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전해지는 게 있다고 믿었고, 많은 인물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표정을 덜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괴물 같은 캐릭터 소화력

배우 장선 - 눈컴퍼니 제공

Q.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해야 할까. 매력에 빠져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원동력은.

“이게 다 수녀님 덕분이다. (웃음) 4살부터 14살까지 10년 동안 수녀님들이 모여계신 수련원의 주일 학교를 다녔다. 11살 때인가, 부활절을 앞두고 성극을 준비하면서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라면 끓여 먹는 즐거움이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순교자를 위한 성극을 봤었는데 어린 마음에 충격과 감명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 함께 놀던 수녀님이 절절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봤던 거다. 그 후로 완전히 매료되었다. 책에서 연극, 연기라는 단어만 나와도 좋았고 중학교에서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접하게 되었다.

카메라와 제가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것도 재미있고 인물을 만나는 게 좋았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사는 시간을 애정하고 궁금하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연기로) 살아가는 시간이 좋다.
성극을 준비하는 시간이 행복했던 것처럼 무형에서 유형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아직도 신난다.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떠올리는 공연에서 실존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다. 그때는 무대 에너지 보다 객석 에너지가 압도적이었던 기억이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으로부터 ‘나 같아서 위로된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떠오른다’는 코멘트를 들었다. 가상의 인물이라도 실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끔 연기하는 제 모습이 좋더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을 연기한다는 게 매번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 그럼에도 늘 새로운 캐릭터를 마주하는 두려움,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동반되지 않나.

“항상 아쉽고 두렵다. 그럴 때는 자신을 믿는 방법밖에 없다. 그 인물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도 불안이 커질 때는 늘 현장의 배우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Q. 김선영 배우가 ‘똘기’의 특별함을 가리키며 보석 같은 배우라고 칭찬했다. 쉽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빠져나오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다.

“거친 인물을 연기하면 평소에도 거칠어진다. (웃음) 아무래도 얼마간 그 인물로 살아왔으니 영향받는 건 물론이고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작품 끝나면 ‘인간 장선’으로 봐주는 사람이 있는 곳에 일부러 간다. 본가에 가거나, 여행을 간다. 가족, 친구 등을 만나서 빨리 장선으로 회복하려고 한다.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호흡을 바꾸는 활동적인 취미 생활도 동반한다. 갑자기 방송댄스를 배운다거나, 피트니스 등을 하면서 몸을 굴린다”

Q. 최근 고향 광주에서 ‘장선 배우전’을 열었다. 뜻깊은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첫 배우전이 고향 광주인 게 가족들도 올 수 있어서 너무 신났다. 상영 후 GV 때 <비밀의 언덕>을 38번 봤다는 관객분이 서울에서 KTX를 타고 와주셔서 기억이 남기도 했다. (웃음) 박석영, 궁유정 감독님이 직접 영상 받고 편집한 인사 영상을 만들어 주셨는데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배우로 지낸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니, 그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떠밀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오랫동안 연기하는 할머니 배우 되기

배우 장선 - 눈컴퍼니 제공

Q. 꾸준히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데뷔작 <소통과 거짓말>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타이틀이 생긴다는 건 책임감도 생기는 일이 아닐까.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제가 받을 상이 맞나’, ‘정말 받아도 되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다. 결국 작품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았다. 카메라 앞에 많이 서지 않았을 때 너무 큰 상을 주셔서 빨리 성장해야겠다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다음 작품에 영향이 있을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장단점이 있더라”

Q. 하얀 도화지 같아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불리고 싶은가.

“최근에 비슷한 질문을 받아서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배우로 ‘안도 사쿠라’를 떠올렸다. 욕심이 보이지 않더라. 배우 자체보다 캐릭터가 더 중요한 사람 같았다. 한번 꼭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저도 배우 ‘장선’의 얼굴보다는 인물이 먼저 보이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비밀의 언덕> 할 때 ‘할매 크러시’라고 말한 적 있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꾸준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얼굴을 발견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연기를 시작한 지 좀 되었지만 언제나 작품은 처음 만나게 되어 새롭다. 이번에 아쉬웠던 저를 복기하면서 다음번에는 이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스스로 한계가 와도, 부족함을 느껴도, 다음번에는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하니 위로가 되더라. 후배에게도 이런 시행착오를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었으면 좋겠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샤인>은 장선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될 것 같나.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대신 아파해주는 게 <샤인>의 키워드고 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찍어서 그런지 촬영 때도 여행 가듯이 했고 한여름 밤의 꿈같다. 이런 기분을 앞으로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모든 것들이 요즘 영화 같지 않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 같고 영화라는 세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냥 가만히 곁에 있어 주는 작품이 <샤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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