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얼굴을 한 'AI 인공지능'을 금지시킨다는 국민 첫사랑

(인터뷰) 영화 '원더랜드'의 수지 배우를 만나다

장혜령 기자 승인 2024.06.07 14:13 | 최종 수정 2024.06.17 13:51 의견 0
배우 수지 - 사진(매니지먼트 숲)

영화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가 보편화된 근미래, 각자의 사연으로 가족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사람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연을 들려준다.

수지는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연인 태주(박보검)를 인공지능으로 복원한 정인(수지)을 연기했다. 6월 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지는 검은 모자와 재킷을 입고 소멸할 것 같은 얼굴로 등장해 감탄을 자아냈다.

4년 만에 개봉한 소감을 묻자 수지는 “촬영한 지 꽤 된 작품을 드디어 관객에게 선사한다는 기대감이 크다”며 근미래적 기술이 막연하게 생각 들지 않는 현실적인 부분도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

특히 정인의 전사가 많지 않아 상대역인 박보검 배우와 만들어갔던 애정이 큰 작품이라며, “4년 전 풋풋했었고 어렸구나”라며 되새겨 보았고, 다른 에피소드도 몰입 되었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에 끌렸냐고 물어보니 “딸은 없지만 바이리(탕웨이)의 서사를 통해 대리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이리의 엄마까지 더해져 모녀의 슬픔이 느껴졌다. 부모님과 영상통화하는 해리(정유미)의 일상이 슬프게 다가왔고, 중년의 용식(최무성)이 밝고 호탕해서 연신 웃음 짓게 만들면서도 죽음을 맞이하는 독특한 방식이 눈에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 태주 보다 정인의 정신건강이 의심

배우 수지 - 사진(매니지먼트 숲)

Q. 그리운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해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부분에 끌려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일단 신선한 이야기였다. 막연한 기술이라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도 독특했다. 기억에 의존해 데이터를 모은다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서비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본인을 복원하는 시스템인데 특별하게 정인과 태주는 그렇지 않아 의문스러웠다”

Q. 정인은 태주가 깨어나서 순간 기쁘지만 예전과 달라지자 복잡한 심경인 것 같다. 밝은 모습 뒤로 그늘지고 어두운 정인을 위해 신경 쓴 부분을 들려 달라.

“감독님이 인간과 소통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셨다. 인공지능 태주는 정인이 듣고 싶은 말만 하고 상황에 따른 위로를 제공한다. 정인의 공허함이 채워지면서 외로운 감정을 느낄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하지만 깨어난 태주와는 대화도 힘들고 서로 무슨 생각 하는지도 몰라 힘들다. 정인이 아파서 약을 먹고 정신이 돌아왔는데 집에 모르는 사람을 데려온 장면으로 함축된다. 아마 정인은 이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내가 알던 태주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게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태주와 소통이 힘든 상황과 인공지능 태주를 대하는 현실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차이를 두었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

Q.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태주가 진짜 불 질렀다고 생각했나.

“(정인이라면) 이미 태주를 확신하고 내뱉는 말이다. 경찰서에서 형사가 ‘이상한 점 없었어요?’ 묻는데 ‘너무 좋아요’ 라니. (웃음) 자기감정을 부정하면서도 너무 좋다는 이상한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Q. 그래서일까.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장면도 섬뜩했다. 머리가 아픈 건 태주가 아니라 정인이란 착각이 들 정도다.

“그 장면이 유독 묘하다고 생각했다. ‘너 왜 나한테 막 대해’라는 대사는 맥락상 나올 수 없는 대사다. 몇 개의 대사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이 대사가 나오니까 저도 놀랐었다. 둘 사이의 혼란과 갈등이 혼자만의 상상으로 힘들어지면서 나오는 대사였다”

· 내가 만드는 수지는 OK, 남이 만드는 건 NO

배우 수지 - 사진(매니지먼트 숲)

Q. 다른 배우들은 대부분 거부하던데 원더랜드 서비스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신청할 거다. 여기서 제 성격이 나오는 건가.. (웃음) T라서 그런지. 대부분 안 한다고 하시던데 성향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다”

Q. 최근 본인 SNS에 올린 ‘원더랜드 서비스 신청서’가 화제가 되었다.

“둘 사이의 과거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캐릭터 이해 차원에서 시나리오를 토대로 작성한 거다. 나머지 것들은 상상하면서 채워갔다. 정인과 태주는 세상에 딱 둘뿐이다. 우주에서도 정인을 챙겨주는 인공지능 태주의 설정을 토대로 ‘정인이 이런 점을 복원하려 했겠구나’ 생각했다. 덤벙거리는 여자친구를 태주가 다 챙겨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관계성을 만들어 갔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

Q. 둘이 케미나 텐션도 잘 맞아서 진짜 연인이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박보검이 따로 만나 사진과 영상을 남기자고 했다고 들었다.

“감독님도 그 제안을 좋아하셨다. 저희가 이렇게까지 해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건가 보다. (웃음) 예상보다 더 진심이었고 둘의 행복했던 시간을 사진으로 메워 보자 콘셉트였다. 그래서인지 쉴 때도 쉬는 거 같지 않았다.. (웃음) 평소 촬영장에 민낯에 운동복 차림으로 편하게 가는데 꾸미고 가야 했으니까.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오빠랑은 대부분 잘 맞았고 서로 배려하면서 시너지가 생겼다. 둘이 노래 부르는 장면도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전날 노래해 보자는 제안을 받고 당황스러움과 걱정을 안고 불렀다. 극의 흐름에서 뜬금없어 보이고 튈까 봐 걱정했었다. 그래도 인공지능 태주와 현실 정인은 절대 만날 수 없으니까. 그 장면이 애틋하게 남은 것 같다”

배우 수지 - 사진(매니지먼트 숲)

Q. 원더랜드는 본인이 죽고 나서 남겨진 가족을 위해 신청하는 서비스다. 하지만 정인은 식물인간인 태주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복원했다. 정인의 선택이 이해되는 건지 묻고 싶다.

“저라면 망설였을 거다. (웃음) 정인 입장에서는 깨어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희망적인 마음보다 포기한 거다. 인간이라고 항상 좋은 선택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게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Q. 우주인 태주는 정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투영된 게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나와 타인의 기억 속의 내가 다른 모습일 거다. 내가 나의 인공지능을 만나게 된다면 이질감이 느껴질 거다. 태주는 본인이 의견 내서 만든 인공지능이 아니라서 다른 인공지능보다 심하게 완벽, 다정한 사기캐(완벽한 캐릭터)다. (웃음)”

Q. 인공지능 수지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상상해 본 적 있나.

“좋은 모습, 완벽한 모습으로 복원하고 싶지만. 일단 만들지 말라고 도장 찍고 세상을 등질 것 같다. (웃음) 나를 내가 만드는 건 괜찮은데, 남이 만드는 나는 의심스럽다. 계속 웃고만 있을 것 같아 무서울지도.. 기분이 처져있고 무거운 표정을 보여주고 숨기고 마음도 크다”

·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나이

배우 수지 - 사진(매니지먼트 숲)

Q. 아이돌로 데뷔해 연기자로 전향한 드라마 <드림하이> 후 13년 차 배우로 성장했다. 배우 생활의 만족감을 곱씹어 본다면.

“저는 감정에 무딘 사람이다. 무언가를 느끼고 표현하는데 습관이 안 돼 있어서 오래 걸린다. 감정을 내비치는 것도 어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기하면서 짜릿함이 올 때가 있다. 배우로 살면서 성격도 바뀌었다.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 놀라면서 연기의 재미까지 느껴졌다. <원더랜드> 속에서는 모든 감정이 쌓여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태주를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때 확 터지는 지점이 있는데 소리 지르는 장면이 정인의 답답한 마음을 그나마 풀어준 장치였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

Q. 배우로서 나이 먹어가는 시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할 거라고 생각한다.

“<원더랜드>를 찍을 때 4년 전에 내가 저랬는지 저도 몰랐던 눈빛, 표정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저는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좀 더 나이 들면 어떤 인성으로 변해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생각해 둔 캐릭터는 없었지만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원더랜드>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이입하는 캐릭터도 다르고 결말도 다르다. 본인이 생각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각자 슬픔을 감당하는 방식 차이다. 원더랜드를 이용하고서 슬픔이 덜어지는지, 힘들어하든지, 결국 오래 걸리더라도 슬픔을 스스로 감당하고 종료할 시점이 온다. 생각보다 사람은 강하기 때문에 힘들어지더라도 결국 견디게 되어있다“

글: 장혜령
사진: 매니지먼트 숲,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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