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원더랜드>의 바이리 역을 맡은 탕웨이를 만났다. 영화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가 보편화된 근미래, 각자의 사연으로 그리운 사람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사람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연을 들려주며 많은 의문을 남긴다.그중 탕웨이는 자기 죽음을 어린 딸에게 숨기려는 바이리를 연기했다. 탕웨이는 원더랜드가 서비스된다면 이용하겠냐는 질문에 “원더랜드라는 세상에 한 번 들어보고 싶다. 보고 싶은 친구나 외할머니를 만나 안아보고 싶다”며 상상력을 펼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밖에서는 감독이지만 집에서는 남편인 김태용 감독과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삶에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지친 기색 없이 캐릭터 설명부터 한국 감독과의 작업, 연기관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앞서 김태용 감독은 아내라서 캐스팅한 건 아니고, 제작자의 추천으로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건넸다고 했다. 아내 찬스라기 보다 탕배우를 모시기 위해 설득했다고 말했다. (웃음) <원더랜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데뷔 때부터 습관이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감정 몰입이 깨지거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잘 골라내는 편이다. 감독님도 제 직감을 믿는 편이다, 테스트 머신이자 직감적인 동물이 저이다. (웃음)감독님을 믿었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화란’을 맡았던 홍콩배우 ‘니나 파우’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야 했다. 팬데믹 때 촬영했었는데 외국 게스트가 입국하는데 까다로웠다. 영국에서 홍콩을 거쳐 들어와야 했고, 홍콩에서 허가증을 받아야만 했다.
니나 파우는 2010년 영화 <크로싱 헤네시>에서 탕웨이 상대역인 장학우의 어머니로 출연했었다. 훌륭하고 유명한 배우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분량이 많지 않았는데 그때 받았던 감정이 인상적이어서 감독님에게 추천했다. <원더랜드>를 본 지인이 친엄마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니까. 그러고 보면 인연이 깊은 분이다. 그때 ‘인연이 내 앞에 왔구나’ 실감했다.
둘째는 친딸(썸머)을 두고 현장으로 떠나야 하는 어려움이다. 그때 많이 어렸었는데 최대한 낯선 환경과 사람, 혼자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촬영 기간과 겹쳐서 딱 일주일, 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미안하다”
Q. 바이리를 통해 딸과 엄마로서의 이중적인 정체성과 모성애를 강조된다. 그동안 다양한 인공지능 캐릭터 중 특별히 바이리 캐릭터를 위해 중점 둔 부분이 있을까.
“최대한 감독님의 디렉팅에 충실했다. 인공지능이니까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이나 눈물 참기가 힘들었다. 엄마 화란과 영상통화 장면은 여러모로 울컥했다. 셋이서 영상통화하는 장면을 찍을 때 직접 영상통화를 하면서 촬영했었다. 표정은 냉정했지만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자제할 수 없었다. 다행히 감독님이 완벽하지 않았던 연기를 편집으로 잡아주었다. 배우는 역시 감독의 도구다. (웃음)”
Q. 배우는 경험을 통해 연기를 해내기도 한다. 실제 딸의 존재 때문인지 유난히 엄마 역할이 어울렸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게 배우의 일이다. 훌륭한 시나리오, 감독의 편집, 음악이 만들어주는 분위기로 완성된다. 상황에 따라 연기할 때 음악이 도움 된다. 나만의 방식을 찾아서 그때마다 다르게 선곡한다. OST, 피아노 연주, 경쾌한 음악, 클래식도 듣는다. (핸드폰의 리스트를 직접 공개함) 필요할 때 꺼내서 듣는다. 음악은 감정, 정서를 컨트롤해 주는 마력이 있다. 운명을 받아들이게 하는 컨트롤 같은 작용이다”
Q. 성준(공유)은 바이리가 원더랜드에서 적응하도록 돕는 인공지능이지만. 사람 같은 그 이상의 감정이 들었다.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성준과 관계가 더 진전되겠다는 상상도 해봤다.
“원더랜드에서 인공지능은 슬픔, 상처, 눈물, 분노가 없다. 그때는 관객의 입장에서 둘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던진 말이었다. (웃음) 성준은 어디든 관리할 수 있는 이동 모니터임 셈이다. 원더랜드의 불균형을 돕는 역할이면서도 가서는 안 되는 구역까지 가버린 인공지능을 스스로 판단하고 관리하도록 설계되었다. 다만, 바이리의 변화에 따라 원더랜드 시스템 속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과학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웃음)”
Q. 어쩌면 성준과 바이리는 낯선 공간에서 모르던 남녀가 관계를 맺어 나가는 <만추>의 연장선처럼 보였던 것 같다.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사랑이나 멜로가 피어날지, 둘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감독님에게 더 물어봐야겠다. (웃음)”
Q. 중화권 작품에서 활약했고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 그중 유독 한국 작품에 출연해 한국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 고르는 선구안이 뛰어난 것 같다. <시절인연> 같은 밝고 경쾌한 역할도 했지만 <헤어질 결심>처럼 무게감 있는 역할이 빛났다.
“좋은 작품과 캐릭터를 만난 건 행운이다. 그게 사랑해 주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배우 입장에서는 감독의 선택을 받기 때문에 고른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구조다. 배우로서 스스로 시나리오가 왔을 때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으면 선택받기 쉽다.밝은 역할과 철학적인 역할을 왔다 갔다 하면 더 좋겠지만 일부러 계획하는 건 아니다. 당시 좋은 시나리오와 캐릭터라면 선택하는 거 같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우수한 영화인들과 더 작업하고 싶다. 새로운 분들과 일하면 경험, 에너지, 노하우를 흡수하게 된다. 배우뿐만 아닌 감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Q. <헤어질 결심> 때 본인이 완성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만추> 이후 오랜만에 김태용 감독과 작업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만추>가 2009년이었고 <원더랜드>는 2021년에 촬영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결혼과 아이의 유무다. <만추> 촬영 전에 그리스 여행 중이었다. 마침 큰 달이 떴지만 울고 있던(?) 서른 살 슬픈 생일날이었다. 울었던 이유는 서른 살인데 미래가 불투명해서다. 아직 결혼도 안 했지, 그렇다고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아이도 없지. 세상에 저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슬펐던 기억이다.(웃음) <원더랜드> 때는 가족이 생기고 힘을 주는 사람도 곁에 있었다. 배우로서 가정이라는 따뜻함이 든든하게 느껴진다는 게 확실히 다른 점이다”
Q. <원더랜드>를 통해 감독뿐만 아닌, 배우도 성장한 게 느껴진다.
“<만추> 때는 감독님이 잘할 수 있는 그때의 장점을 다 보여줄 최적의 영화였다. 그 작품 이후 얻은 경험이 작품으로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과거에는 본인이 잘하는 것만 했다면 이제는 벗어나서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한다. 감독이란 직업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연구하면서 가능성에 따라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있든, 보고 느끼는 것, 보고자 하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탐색한 기분일 거다.
성찰하는 성숙한 남성으로 연구하고 파헤치고자 했던 것을 찾아낸 기쁨을 공유할 용기가 생긴 것 같다.감독님은 표현하는 것, 탐색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는다. 아직도 파내고자 하는 영역은 다 파내지 않은 것 같다. 다음 작품이 뭘까 기다려진다. 감독님만의 독특한 유머 감히 발현되는 방식, 자기만의 것을 표현하는 게 다음 작품이지 싶다”
한편, <원더랜드>는 <만추>(2011)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김태용 감독의 신작으로 아내 탕웨이와 두 번째 작품이자 정유미, 최우식, 박보검, 배수지 등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개봉은 오는 6월 5일이다.
글: 장혜령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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