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씨네큐브에서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로인 야쿠쇼 코지와 송강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야쿠쇼 코지는 15년 만에 내한해 한국 팬들의 갈증을 부추겼다. 영화 상영 후 50여 분 동안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와 소탈한 대담이 이어졌다. 현장에는 팬들의 열정적인 환호와 사인 요청으로 북적였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이 3일 만에 시나리오를 쓰고 17일 만에 일본에서 찍은 영화다. 도쿄 공중화장실 프로젝트를 장편화 해 한 청소부의 반복되는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아날로그의 매력에 빠져 60-70년대 올드팝과 고즈넉이 일상을 들여다보는 느림의 미학이다.
한일 연기 장인의 특별한 만남
야쿠쇼 코지는 <퍼펙트 데이즈>로 제76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받았고, 송강호는 <브로커>로 제7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외국 감독과 자국에서 찍은 영화로 해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특별한 순간을 공유하는 양국의 대표 배우다.
야쿠쇼 코지는 당시를 회상하며 운을 떼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세계적인 감독이지만 촬영 당시 극장 상영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감독을 존경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기에 영화 제작 방식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마치 빔 벤더스 영화 학교에서 촬영하는 분위기였다"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미소를 잃지 않고 유머러스한 분이라 항상 유쾌했다. 독일 감독이지만 일본에 애정을 품고 있기에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유니클로 야나이 코지의 프로젝트의 기획을 듣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후 단편과 사진집 제안을 받았는데 감독의 참여로 장편화되었다. <퍼펙트 데이즈>로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인데 마지막 여정에 송강호와 소개할 수 있어 꿈같은 기획이다. 만약 봉준호 감독이 찍었다면 히라야마는 송강호가 되었을 거다. 역시 빠른 사람이 이기는 거다”라며 재치 있게 대답했다.
더불어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즈’를 실제로 많이 들었다. 천천히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분위기가 좋았다”며 명곡이 일상에 미친 영향까지 덧붙여 설명했다.
송강호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촬영장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작년 칸 영화제 때 레드 카펫과 수상한 후 무대 뒤 축하 인사 후 두 번째 만남이다. 아카데미 시즌이라 먼저 볼 수 있는 특권으로 작년 12월에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며 “무심한 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빛과 말 없는 야쿠쇼 코지라는 장인의 미소, 연기의 깊이나 삶의 모토도 가늠할 길이 없다”며 연기를 극찬했다.
영화는 최소한의 상황에서 인물의 표정과 몸짓이 최대화되는 영화다. 같은 배우로서 송강호는 “롱테이크로 완성된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히라야마의 클로즈업을 보면서 배우로서 궁금증이 들었다. <살인의 추억> 때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봉준호 감독은 저만 따로 불러 귓속말로 심정과 표정을 주문했다”며 빔 벤더스 감독의 디렉팅을 궁금해했다.
야쿠쇼 코지는 “제 얼굴이 큰 스크린에 투영되는 게 처음이다. 마지막 장면은 운전하는 설정이지만 카메라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가 아침을 맞아 ‘필링 굿(Feeling Good)’을 듣는 라스트 신을 주문했다. 현장에서 음악을 틀어 놓는 일은 잘 없었는데 그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촬영했다. 아마 ‘니나 시몬’의 영혼에서 영향받아던 것 같다. 시나리오에 ‘눈물이 조금 맺혔지만 슬픈 것 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화장실로 출근한다’고 적혀있었다. 직접적인 눈물을 흘려야 하냐고 물어보니 ‘알아서 하라’는 주문을 받았다”며 촬영 비하인드를 소개했다.
히라야마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엔딩 장면에서 히라야마의 미소가 압권이지만 매일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태양에게 건네는 인사가 인상적이다. 그 장면이 시나리오에는 어떻게 쓰여 있었는지, 당시 감정의 상태가 궁금했다.
야쿠쇼 코지는 “미소를 짓는다는 지문은 없었다. 그저 ‘히라야마가 현관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심호흡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는 ‘웃는다. 운다’는 표현 자체가 없었다. 히라야마를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빔 벤더스 감독의 연출 덕분이다”라며 감독의 연출력을 감탄했다.
야쿠쇼 코지는 촬영 후반부가 돼서야 캐릭터의 전사가 적힌 메모를 전달받았다. 메모에 쓰인 정보를 궁금해하자
“감독이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했지만 앞선 일정에서 말했고 개봉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노트에는 히라야마의 전사와 화장실 청소부가 되기까지의 과정, 히라야마와 코모레비(Komorebi)의 관계가 자세히 적혀있었다. 태양을 보고 미소 짓는 건 태양이 코모레비를 만들어주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연출 같다. <퍼펙트 데이즈>를 다섯 번 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고, 10번 보면 훨씬 더 좋은 영화로 느껴질 것이다”며 N차 관람을 유도했다.
이를 듣고 있던 송강호는 “5월에 개인적인 일로 2박 3일 도쿄에 머물렀다. 점심 식사 후 한 공원에 앉아 코모레비와 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했다. 잠시나마 히라야마가 되어봤다”며 최근 직접 영화를 떠올린 기억을 공유했다.
히라야마는 코모레비를 즐기지만 필름 카메라로 찍는 행동,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찢는 행동을 반복한다. 실제 야쿠쇼 코지도 필름 사진을 찍길 즐긴다는 취미가 알려져 궁금증을 유발했다.
야쿠쇼 코지는 “사실은 심각한 기계치다. 젊었을 때 점쟁이에게 포토그래퍼로 성공하겠다는 말을 듣고 비싼 카메라를 구입했었다. 설명서도 읽지 않고 사진을 찍었더니 핀트 나간 사진이 많았다. 그래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소문은 과장된 오해다. 테크닉이 없어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만 찍는다”고 말해 웃음을 유발했다. “영화 속 카메라는 감독이 주문한 스태프의 것인데, 신기하게도 저도 고장 났지만 같은 기종이 있었다”며 말했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평일과 주말의 작은 차이 말고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반복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기쁨과 위로를 발견하는 각자의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 속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묻자, 송강호는 “조카가 방문한 후 여동생이 조카를 데리러 올 때다. 운전기사가 달린 고급 승용차를 보면 유복했던 히라야마의 과거, 현재의 가치관이 궁금해진다.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했던 표정과 작품의 정체성과 숨결이 느껴지는 명장면이었다”고 곱씹었다.
고독하고 엄격한 배우의 길을 가는 두 사람
일본과 한국의 대표 배우, 국민배우인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작품을 언급하며 팬심을 드러냈다.
야쿠쇼 코지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10번 이상 봤지만 가장 먼저 송강호란 인물을 인식한 건 <쉬리>였고, 다음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충격적이었던 <살인의 추억>이다. 작품 자체도 유머와 긴박감이 넘치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시골 형사의 날아차기 장면에서 폭소를 멈출 수 없었다. 송강호의 매력은 실존하는 사람처럼 캐릭터를 직조하는 리얼리티다. 유머와 진지함의 진폭이 매력적인 배우다”라며 <살인의 추억>을 보고 경외심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를 듣고 있던 송강호는 “과찬이다. 제가 야쿠쇼 코지를 처음 본 작품은 <셸 위 댄스>였다. 이후 <큐어>, <우나기>, <멋진 세계>를 좋아한다. 오늘은 <고독한 늑대의 피>가 연상되는 스타일링을 하고 왔다. 작품마다 황홀할 정도의 명연기를 보여줘 선택하기도 힘들다. <퍼펙트 데이즈>는 야쿠쇼 코지 연기의 집대성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요즘도 봉준호 감독과 <우나기>에서 아내를 살해한 후 피범벅인 채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로 달려가 자수하는 장면을 종종 화제로 삼는다. 고통과 연민이란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는 배우는 전 세계에서 야쿠쇼 코지 밖에 없다”며 극찬했다.
배우란 자신에게 엄격해지면서 외로워지는 직업이다. 한 인터뷰에서 야쿠쇼 코지는 작업을 끝내고 아쉽고 부족한 점을 만회하려고 다음 작품을 하다 보니 부지런히 일하게 되었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직업적으로 <퍼펙트 데이즈> 같은 일상의 감사함과 행복감을 느낄 때는 묻자, 야쿠쇼 코지는 “머릿속에서 그린 대로 몸이 따라오지 않을 때 의기소침해진다.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매몰되는 행동을 반복하며 수십 년 연기 활동을 해왔다. 스스로 잘한 것 같다고 느끼면 다음으로 이어지는 동기부여가 안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누구나 완벽한 삶은 없다. 만족스러운 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완벽함과 오케이 사이를 끊임없이 달려가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배우는 시나리오대로 연기하는 사람이지만 자신만의 색을 덧입힌다. 지문에 나오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순간의 분위기에 담아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두 배우의 만남이 단순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의 감독과 배우, 관객이 연결되는 미묘한 관계를 넘어 영화 매체의 속성과 맞닿아 있는 영화로운 순간이었다. 한일 양국 간의 역사적인 만남의 현장으로 훗날 기록될 것이다. 친근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오고 가는 양국의 대표 배우를 빠른 시일 내에 한 영화에서 만날 날을 기대해 본다.
한편, 7월 3일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는 절찬상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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