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라나 워쇼스키가 '매트릭스: 리저렉션'을 내놓았을 때 일부 평론가들은 좋아했으나, 대부분의 관객이 보인 반응은 처참했다. 당시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관람한 본 기자는 작품성과 세계관에서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관객들의 반응과 같았다. 많이들 '매트릭스'를 철학적 요소가 가득 담긴 블록버스터라 정의하며, 이 작품의 성공을 그러한 철학적 색채 덕분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매트릭스'의 진짜 성공 요인은 액션과 이전에 보지 못한 시각효과 덕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작품은 영화사의 길이 남을 성과를 낸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원작자인 워쇼스키와 제작진은 '매트릭스' 본연의 매력에 그리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철학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스위트홈' 시즌 2, 3를 몰아본 소감은 3년 전 '매트릭스: 리저렉션'을 본 느낌이었다. 이응복 감독과 제작진은 '스위트홈' 1편이 왜 성공했는지를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걸 알고도 좀 더 철학적인 요소를 강조해 예술 작품을 만들려 한 것일까? 결과적으로 '스위트홈' 시즌 2, 3은 작품의 주제처럼 이상한 욕망에 빠진 바람에 스스로 괴물의 되고 자멸의 길을 걸은 이상한 작품이었다. 드라마의 마지막 편상욱(이진욱)이 스스로 최후를 선택했듯이 말이다.
'스위트홈' 1편의 성공 요인은 괴물화이니, 욕망이니 거창한 주제를 벗어나 아파트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생존극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상대하는 존재는 좀비와 같은 전형적인 적이 아닌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며, 주인공들도 충분히 괴물화가 될 수 있기에 긴장감을 갖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오락성이 강점이었던 작품이다. 여기에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의 관계와 충돌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나름의 괜찮은 드라마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원작 웹툰의 요소를 어느 정도 계승했기에 무난한 완성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후 시즌 2, 3 동시 제작이 확정되면서부터 '스위트홈'은 원작의 요소를 벗어나 제작진이 순수하게 창작하는 이야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물론 원작자인 김칸비 작가의 자문을 받고 완성했다고 하지만 <무빙>의 사례처럼 강풀 같은 원작자가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이는 단순한 자문에 불과한 제작진이 완성한 이야기다. 1편의 밀폐된 공간을 벗어난 '스위트홈'은 한층 스케일을 키우고 더 많은 캐릭터를 등장시켰지만, 이는 시리즈를 망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아무리 공간이 바뀌어도 1편이 지니고 있었던 특유의 긴장감, 특정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건, 무난한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인물 설정이 필요했는데, '스위트홈'은 2편부터 새로운 세계관 확장에만 치중했을 뿐 기본적인 구성 요소는 철저히 무시해 버렸다.
공간이 확장되면서 1편 특유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산만해지고 드라마 역시 분산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1편의 주요 인물들이 어처구니 없이 사망하거나 퇴장하는 일이 발생했고, 새로운 인물들 역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등장한 바람에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오지 못했다.
1편 본연의 매력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스위트홈' 시즌 2는 시즌 3에 와서도 갈팡질팡하더니 결국 큰 변화를 주지 못한 채 이야기를 급마무리하게 되었다. 작품이 오락성의 흥미를 상실했는데, 괴물화와 신인류와 같은 확장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괴물화를 통해 인간에 대해 묻고자 한 것 같지만, 그것도 결국 기본 흥미요소가 있어야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의 깊은 철학이 멋진 액션과 세계관 설정을 통해 전달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스위트홈' 시즌 2, 3을 보면서 아직은 한국 연출자들에게 후속 시즌제를 선보이는 것은 무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D.P.'시즌 2가 허무하게 마무리 되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나마 'D.P.'시즌 2가 '스위트홈' 시리즈 보다 더 좋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직은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 제작진의 노하우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에 현재 넷플릭스가 준비 중인 '오징어 게임','지금 우리 학교는'과 같은 후속 시즌이 확정된 시리즈들의 향방도 불안하게 느껴진다. 공교롭게도 '오징어 게임' 같은 경우도 캐릭터가 너무 많고 대부분 주연급 배우들이어서, '스위트홈'의 사례처럼 과연 이들의 분량을 잘 소화해 줄 수 있을지 걱정된다.(물론 황동혁 감독의 재능을 믿는다.)
한국 드라마가 OTT 시대를 맞이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 그러한 명성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높은 나머지 시청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결과물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OTT의 구독자들은 브라운관 시대의 시청자들과 눈높이가 다르다. 우리나라 작품 외에도 세계의 여러 좋은 작품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함께 선보이고 있기에,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작품을 원하고 있다. 그러한 글로벌 시청 시대에 수많은 작품들과 경쟁해야 하기에 우리 제작진의 더 많은 노력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시선이 필요하다.
'스위트홈'의 완성도 실패와 이로 인한 해외 시청자의 부정적인 반응은 한국 드라마라 해서 무조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가 선전하는 것은 미드와 같은 해외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감성과 정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이제 그 정서는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보편화가 되었다.
현재 넷플릭스를 비롯한 디즈니+, 애플TV+ 등의 서구권의 오리지널 작품만 봐도 촬영기 술, 디테일한 설정에서는 우리 드라마가 추구하지 못하는 기술과 이야기를 지닌 작품들이 상당하다. 그 점에서 볼 때 이제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한국 드라마가 해외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과연 우위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정서적인 면에서 다르지만 디테일한 완성도를 따진다면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의 작품들과 경쟁하는 시대인 만큼 좀 더 다양한 해외 드라마를 연구하고 참고하며, 좋은 점을 배우고 받아들이며 더 발전했으면 한다.
'스위트홈' 시즌 2,3 최종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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