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착한 여자 부세미>가 지난 11월 4일 종영했다. <착한 여자 부세미>는 흙수저 경호원 김영란(전여빈)이 인생 한 방을 꿈꾸며 시한부 재벌 회장 가성호(문성근)와 계약 결혼 후 막대한 유산을 노리는 이들을 피해 3개월간 부세미로 살아남아야 하는 이야기다. 범죄물 장르적 외피에 인간 본성을 다루는 관계성을 더한 종합선물 세트 드라마다.

극 중 가성호 회장의 의붓딸이자 교수인 가선영을 연기한 장윤주와 7일 강남의 카페에서 종영 인터뷰를 가졌다. 장윤주는 “마지막 방송은 다 같이 봤고 집에서 따로 시청하면서 울었다. 가선영과 가회장의 감정신의 울림과 가회장이 김영란에게 남긴 메시지의 여운도 컸다. 어느 현장보다도 단합력이 좋았다. 젊은 스태프들이 파이팅 넘쳐서 방송 전부터 들떠 있었다. 어느 현장보다도 애정이 남달랐다. 스타 작가, 감독, 배우 하나를 중심에 두고 가는 작품도 많은데 우리 드라마는 다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해낸 드라마 같다”며 종영 소감을 밝혔다.

20년 전 인연으로 첫 악역 도전

장윤주는 18세에 모델로 시작해 톱모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연기자, 싱어송라이터, 라디오 DJ 등 영역을 확장해 왔다. 2015년 <베테랑>을 통해 배우로 데뷔하자마자 천만 영화 출연이란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이후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친화력과 코믹한 분위기를 살려 다수의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맡았다.

배우 전향 6년 만에 영화 <세자매>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영화 <시민 덕희>, <최선의 선의>,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거치며 대중성을 획득했다. 작년에는 뮤지컬 <아이참>으로 뮤지컬 장르까지 섭렵해 재능을 증명했다.

그는 모델이었을 때도 꾸준히 영화 제안은 왔었지만 그때는 모델일만 미쳐있었다며 모든 시작은 박유영 감독이었다고 운을 떼었다.

“감독님이 20대 때 패션쇼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저를 보고 카리스마 있는 모델이라 생각하셨다더라. 시간이 흘러 <최소한의 선의>에서 무표정한 선생님 역할을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무대 카리스마와 무표정이 만나면 신선할 것 같다며 적극적으로 구애하셨다. 사실 제작사와 매체가 제 캐스팅에 의아해했다고 한다. 저도 가선영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다. <유괴의 날>로 데뷔한 신인 감독님을 믿고 가도 되나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연기적인 것부터 구성의 톤앤매너, 충분한 레퍼런스 제시, 캐릭터의 전사를 전해주어서 믿음이 생겼다”


가선영은 드라마 전체로 보면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과 노려보는 눈빛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동안 쌓아왔던 억척스럽고 엉뚱한 이미지를 지우고 첫 악역에 도전했다.

“가선영만 나오면 효과음이나 음악도 달리 깔아 주는 감독님의 애정 덕분이다. 악역의 눈빛은 무대 위 눈빛과는 다르더라. 비릿한 미소가 마지막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디렉팅에 충실했다. 표정 하나를 돌려쓸 수 없어 상황에 맞게 꺼냈다. 사람을 깔보면서 항상 위에 존재할 것 같은 눈빛, 분노의 눈빛, 언젠가 풀려날 거란 확신의 눈빛 등 변주해 봤다. 저도 몰랐던 모습을 잘 잡아준 편집의 힘이고 결과물을 보고 제가 더 감사했다”

다른 배우였다면 가선영의 패셔너블한 스타일과 극도로 예민한 완벽주의자 성향은 달라졌을 거다. 장윤주라서 가능했던 패션 센스가 캐릭터와 조화를 이뤘다. 그는 “한 신 나올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초반부에는 블랙 앤 화이트와 장식이 많았다. 첫 등장은 제니 씨가 브랜드 광고에서 입었던 트위드재킷이다. 스타일리스트의 소장 의상인데 장례식장에서 어울릴법한 의상이라 선택했다. 6,7부에 등장한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었다. 진한 파랑, 빨강의 원색 옷은 갑옷같이 느껴졌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마다 캐릭터에 맞는 설정을 준비한다. 성격, 성향, 자세, MBTI까지 분석하는 편이다. 가선영은 재벌가이자 완벽주의자다. 편집증, 결벽증이 있는 날카롭고 예민한 인물이다. 댓글에서 더듬이라며 지적 받 줄 알았지만 (웃음) 한 올이 시그니처다. 가선영이라면 할 법한 헤어스타일이다. 머리카락을 묶는 부피감과 위치도 고려했다. 중앙에 묶으며 너무 밝아 보이고, 아래로 묶으면 처져 보인다. 무언가 하나 날 서 있는 느낌, 한 올이 주는 힘을 믿었다”라고 덧붙였다.

대선배와 첫 호흡, 떨렸지만 영광


가선영의 악행은 지나치다 못해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 의붓아버지와 의형제, 친동생마저 잔인하게 살인하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다. 사이코패스 성향 때문에 의도와 감정을 좀처럼 들여다보기 힘든 캐릭터다.

“가선영의 최종 목표는 돈이 아닌 가회장을 향한 복수였다. 그 인간 하나 때문에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믿은 뿌리가 자라난 결과다. 28년 전 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고 엄마마저 죽였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가 진실을 알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오해해서 상처를 주고받았던 게 불쌍했다. 충분히 풀 시간이 있었음에도 시도조차 하지 않아 안타까웠다. 겉으로는 사회적인 권력과 자산 때문에 존속살해까지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면에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자라났던 거다”

장윤주의 첫 빌런의 상대역은 다름 아닌 문성근이었다. 대선배와 호흡에서 밀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팽팽히 맞섰다. 인생 멘토를 만나 행복했다고 말했다. 장윤주는 “가회장 대치하는 장면만 10시간 촬영했다. 첫 살인이란 극적 장면의 상대 배우가 선배님이라 영광이고 감사하다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초록 물고기>를 보며 자란 세대라 선배님과 근사한 투샷이 나왔다는데 행복하다. 29세 경호원과 결혼한 70세 대기업 회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드라마의 콘셉트를 떠나 문성근이란 배우의 존재감과 에너지가 상당했다. 작년에 <아이참>이란 뮤지컬을 하면서 무대의 희열을 느꼈는데 선배님이 저보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이 장점’이란 말을 해주셨다”라며 뿌듯해했다.

장윤주의 신장은 171cm다. 모델로는 작은 키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톱모델로 성장했다. 하지만 큰 키는 배우로서 장점이다. 이를 다르게 승화한 만큼, 첫 도전을 빌어 악역도 계속 제안 오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장윤주는 “모델 때는 ‘키가 좀 더 컸다면’이란 말을 많이 들었고, 마흔 살부터 연기를 하면서는 ‘20대 때부터 했다면’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서울예대 재학 시절 목소리가 장점이라고 했던 오빠가 있다. 그때는 흘려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노래할 때, 내레이션 할 때, 예능 때마다 달라지더라. 말할 때 어미를 끄는 버릇이 있어 말투를 고치는 게 힘들었다. 엣지있게 끊어 달라는 감독님의 제안에 초반 톤을 완성했다. 악역도 몇 번 제안은 있었지만 저도 누울 자리를 보고 파악하는 편이라 고사했었다. 기술이나 경험도 부족했던 것도 맞다. 무엇보다 가정과 아이가 있는 한 아이의 엄마이니 자극이 필요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10년차 배우로 자리잡았지만 연기를 하면 할 수로 어렵다고 털어놨다. “모델을 할 때와 달리 현장에는 수많은 스태프와 선배님들이 있어 존재감이 작았다. <세자매>부터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지만 다른 영역의 메커니즘을 익히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연기를 괜히 했나 싶어 스스로 질문도 수없이 던져봤다. 확신 없이 방황하던 시간을 1년 정도 보냈다. 그때 우리 딸 리사의 응원에 힘을 얻었다”다며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차기작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가선영을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다며 여운 길다고 고백했다. 가선영은 대중의 미움을 받았지만 자신은 기꺼이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배우 본연의 자세도 흐트러짐 없이 보여줬다. 모델에서 배우로 그리고 엄마가 된 장윤주의 아름다운 행보가 앞으로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임신했을 때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며 태교했었어요. 내놓으라 하는 할머니들처럼 에너지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부러웠죠. 꾸준히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마 가정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삶이 달라졌을 거 같아요. <눈물의 여왕>도 영화만 했지 드라마는 선뜻 도전하기 어려워 거절했다가 안전성이 보여서 첫 드라마로 선택했었죠. 잘 한거 같아요. 우리 딸도 정주행할 만큼 대본도 좋았으니까요. 또 앞으로의 일은 누가 알겠어요. 제 나이 마흔 중반이지만 <은중과 상연> 같이 리얼함이 살아 있는 소소하고 감성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