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2009년작 영화 ‘박쥐’는 서양 전통의 뱀파이어 장르를 한국적 일상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기이한 미장센으로 주목받았다.
극 중 주인공들이 머무는 공간과 행동 양식에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국가적·문화적 요소가 배치되어 묘한 공기를 형성한다.

이는 현대 한국사회의 현실적인 내면을 ‘잡종성’이라는 키워드로 담아내고자 한 연출 의도의 결과물이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분석을 통해 “영화 ‘박쥐’는 기획 단계부터 에밀 졸라의 19세기 프랑스 소설 ‘테레즈 라캥’과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뱀파이어 장르, 그리고 21세기 한국이라는 배경이 결합한 고도의 ‘혼종성’을 띤다”고 짚은 바 있다.

타인의 피가 수혈되어 생명을 이어가는 뱀파이어의 이종적인 생리적 조건처럼, 영화 자체가 지닌 연출 스타일 역시 여러 외래문화의 혼용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태주(김옥빈 분)와 라 여사(김해숙 분)가 꾸려가는 ‘행복한복집’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일본식 적산 가옥에서 한국 전통 의복인 한복을 짓는다.

왜색이 짙은 기하학적 공간 안에서 전통 한복을 바느질하는 시각적 모순은 극의 기형적인 미를 대변한다.
또한 이 안에서 인물들은 러시아의 대표술인 보드카를 마시고, 중국의 놀이인 마작을 하며, 필리핀 출신의 아내 이블린이 이들과 한 식구로 어우러진다.

박찬욱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순수한 전통적 정체성보다 여러 외래문화가 잡스럽게 뒤섞인 풍경이야말로 실제 지금의 한국 사회를 가장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배경 연출의 의도를 전했다.
기괴한 청각적 불협화음을 자아내는 배경 음악 역시 철저히 계산된 연출이다.

영화 내내 고풍스러운 바흐의 클래식 선율과 대조를 이루며 웅얼거리듯 흐르는 노래들은 이난영의 ‘다방의 푸른 품’(1939), 남인수의 ‘고향의 품에’(1954) 같은 일제강점기 전후의 옛 트로트 대중가요다.
특히 이난영의 노래 가사 속 “생각을 말해야지”라는 구절은 라 여사가 전신 마비 상태에서 눈빛으로 범죄를 고발하는 순간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기묘한 대사로 변주되는데, 이는 박 감독이 평소 언젠가 영화 대사로 사용하고자 마음먹었던 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매주 수요일 밤마다 행복한복집에서 벌어지는 마작 모임도 독특한 충무로의 향수에서 기인했다.
박 감독은 어릴 적과 충무로 입문 초기,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1세대 영화인들이 대기 시간마다 마작을 즐기던 특이한 광경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다만 시나리오를 집필하던 당시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2007)가 개봉해 마작 장면으로 화제를 모으자 연출의 겹침을 두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으나, 자신만의 연출 톤으로 고유한 서스펜스의 마작 테이블 신을 밀어붙였다.
이처럼 ‘박쥐’의 도처에 흩뿌려진 다문화적 요소들은 단순한 배경 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과 현대, 국산과 외산이 무질서하게 얽혀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다층적인 리얼리티를 기묘하면서도 정밀하게 포착해 냈다.
이 때문에 최근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관객이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의도치 않게 오늘날의 트로트 부활과 다문화 가정의 당연한 풍경을 수십 년 앞서 예견했던 한국 영화가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감상평이 뒤늦게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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