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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 박해일 “침묵의 시대 관통하는 기자 연기, 전율 느꼈다”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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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암살자(들)’의 박해일 배우를 만나다

출처: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영부인 저격사건의 의혹과 배우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10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박해일과 만나 영화 속 캐릭터 빌드업부터 연기론 및 연기 소신 등 궁금증을 풀어갔다.

영화는 세 인물의 시점이 하나씩 모인다. 최전선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 철구(유해진), 유려한 통찰력을 발휘해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 베테랑 기자 재환(박해일), 당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의 시선을 통해 의문의 실체에 다가간다.

박해일이 맡은 사회부 기자 재환은 모두가 저격 사건을 서둘러 결론지으려고 할 때 집요하게 정황을 파고들며 조각난 단서를 모아 연결고리를 포착하는 인물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재환”

출처:하이브미디어코프

-허진호 감독과 ‘덕혜옹주’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암살자(들)’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작품에 ‘빨려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도전해 보고 싶었다. 감독님은 배려심도 많으셨지만 장점과 한계, 공통적으로 즐길만한 부분도 서로 통했다. 저랑 성격도 비슷하다. 감독과 배우가 충돌하기보다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찾아보는 방식을 즐긴다. 유기적으로 풀면서 오해를 줄여가는 방식이 일과 삶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문사 사회부를 이끄는 수장이자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주도적인 인물 ‘재환’의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기사가 편집되고 윤전기가 돌아가면서 신문이 발행되는 과정을 처음 공부했다. 감독님이 만들어준 기자 설정이 있지만 그것만 연기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역할이었다. 기자이자 부장의 역할로서 후배를 대하는 방식은 감독님을 참고했다. 조직 안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직위의 책임을 배웠다. 기자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취재한 기사를 이야기할 때 보면 수평적 구조다. 여전히 ‘선배’, ‘부장’ 호칭을 유지하는 관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자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지만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흥미로웠다. 그래서 감독님의 말씀과 시대성을 참고했다. 넘겨주신 자료로 시대상을 간접 경험했다. 리더로서는 신문사에 속한 수많은 조, 단역 배우와 어울리면서 밸런스를 맞춰 갔다. 특히 속도감이 느껴지는 빠른 호흡이 작정한 듯 보였다. 그게 현장에서도 느껴졌고, 저도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대적 압박 속에서도 정의로움을 잃지 않고 맞서는 ‘재환’의 특유의 기질이 메시지 전달자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능청스럽다가도 종종 머뭇거리는 등 입체적인 캐릭터가 재환이다.


먼저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자 했고, 시대적 공기를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당시에는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하는 신문사에 빨간펜을 들고 기사를 재단하는 검열관이 존재했다. 그 공간의 재환은 머뭇거림과 답답함, 눈치 보는 현실적인 느낌을 살렸다. 감독님이 인물을 다루는 방식을 따랐다. 감독님은 ‘이 사람이라면 다르게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면서 질문을 던지신다. 배우로서 유연하게 준비를 해가야 어떤 질문에도 잘 대처할 수 있어 염두에 두었던 부분이다.

출처:하이브미디어코프

-철구와 달리 재환은 전사나 가족력이 드러나지 않고 유니콘처럼 존재한다.

결혼 여부부터 가족 관계 등 떠올려 봤지만. 결국 사족 없이 사건에만 집중하는 캐릭터로 가게 되었다. 굳이 재환의 가족을 꼽자면 신문사 팀원이다. 재환은 경험치가 풍부해서 앞뒤 문맥을 잘 파악하는 인물이다. 영일에게 취재거리를 던지기도 하고 직접 써보라고 지시도 한다. 티 나지 않지만 계산도 빠른 사람이라 결정적일 때 발로 뛰는 취재도 도맡는다.

-영화의 절정은 ‘자유언론 실천 선언문’을 읽는 장면이고, 재환의 절정은 은폐하려는 중앙정보부를 향해 날렵한 질문을 던지는 취재 장면이다.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신마다 난도를 체크하는 버릇이 있다. ‘암살자(들)’은 네다섯 군데가 높은 레벨이었다. 그중 상급이 ‘자유언론 실천 선언문’ 낭독 장면이었다. 모두가 그 장면을 찍을 때는 말없이 끈끈한 유대감이 명확해졌다. 만약 제가 서퍼라면 파도의 크기와 성질을 몰라도 한번 올라타서 경험해 보자는 취지로 연기했다. 실제 대사가 씹히기도 했는데 계산된 연기는 아니고 그마저도 상황에 휩쓸려 맡겼다. 취재 장면은 레벨로 치면 2단계다. (웃음) 전날 밤부터 연습했다. 수많은 기자 사이에서 끊지 않고 진실을 추궁하는 센 장면이라 부담이 컸다. 테이크도 많이 갔는데 어느 장면보다도 온도가 뜨거웠다.

-신문사 후배 영일과 정보를 교환하는 경찰 철구와 케미를 형성하기 위한 빌드업은 어땠나.

민호 씨랑 처음 작업해 봤는데, 촬영이 없을 때도 찾아와서 영일로 녹아들어 가려는 태도가 읽혔다. 재환 입장에서는 절대 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열쇠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해진 씨 뿐만 아니라, 여러 배우와 관계도 끝까지 좋았다. 모두가 몸을 아끼지 않고 연기해 주었다.

-허진호 감독은 재환이야말로 자신이 되고 싶은 어른 상이라고 말했다.

감독마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나 개성도 다를 텐데, 재환은 ‘덕혜옹주’의 김장환과 비슷하다. 또 그런 재환은 감독님의 기질과도 닮았다. 감정의 폭이 크지 않고 차분하고 조용한 분이라 말 한마디를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다. 모니터링하면서도 ‘어떤 기분으로 연기한 거냐’며 친절하게 물어보신다. 그 기분을 함께 공유하고 만들어가려는 연출자다. 그런 태도의 감독이라면 배우는 자기 연기를 믿어준다는 의미로 무장 해제되고 끝까지 호흡하고자 신뢰가 생긴다. 서로의 최대치를 끌어내도록 도움 주는 게 감독님의 현장이다.

“선입견 깨는 방식이 원동력”

출처:하이브미디어코프

-2000년 데뷔 후 오직 영화만 파고드는 과작 배우다.

솔직히 느린 편이다. 가진 게 많지 않아 이것저것 끌어 쓰는 배우다 보니, 하나 끝나고 다른 작품에 바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일단 하나를 하면 잘하든 못하든 빠져나가는 시간이 걸리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해볼 만한 것을 선택하는 사이클이다. 활동 시기에 비해 작품이 많지 않은 배우가 된 것 같다. 이제 나이가 많다 보니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기도 한데, (웃음) 힘쓰는 방식이나 시스템을 전환해서 작품을 연달아 해보려고 시도 중이다.

-필모그래피에 영화만 있다. 글로벌 OTT 작품에서 볼 날도 있는 건가.

앞서 말했듯이 속도를 좀 내겠다고 생각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웃음) 드라마나 OTT는 호흡의 길이나 매체를 다루는 태도가 미세하게 다를 것 같다. 다시 배우고 공부해야 할 것 같아서 하던 거나 잘 하자고 생각했던 거다. 물론 ‘절대 안 하겠다’, ‘영화만 한다’는 발언은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몇 년 전에 ‘로마’도 봤고, 이제 ‘가능한 사랑’도 볼 수 있잖나. 영화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영화관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상황을 열어두고는 있고, 부담 갖지는 말자고 다독이는 중이다. 언젠가는 드라마, OTT도 할 날이 올 것 같다.

-캐릭터 분석 방법이나 연기론이 궁금하다.

감독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어떤 걸 요구할까, 배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상대 배우와 호흡하면서 어떤 의도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태도를 고민한다. 촬영이 없어도 미리 현장에 가보면서 익숙함을 체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일이 재환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공중전화 장면이 거의 영화의 첫 촬영이었다. 리허설 개념으로 현장에 가봤다. 민호 씨의 연기 준비 과정도 보고 호흡도 점검할 겸 참석해 봤다. 미술팀이 공들여서 신문사를 만들어 줬는데 실존하는 리얼리티가 강했다. 책상에 앉아도 보고 타이핑도 해보면서 상상력을 동원해 보기도 했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작업이 저만의 예습 방식이다.

-작품 선택 기준이 궁금하다.

“신선함에 매료되는 경향이 있다. ‘최종병기 활’을 선택할 때도 김한민 감독님이 국궁을 쥐어 보라고 선물해 주었는데 순간 그립감이 좋았다. 활을 소재로 긴 호흡으로 끌고 갈 거란 제안에 끌렸다. 박찬욱 감독님과 ‘헤어질 결심’을 할 때는 시민에게 친절한 형사인데 품위 있고 문학적 태도도 갖춘 인물이란 소개에 솔깃했다. 남성 배우가 한 번쯤은 해본다는 형사를 지금껏 해본 적 없기도 해서 궁금했다. 물론 ‘암살자(들)’도 허진호 감독님이 기자의 시선으로 기승전결을 끌고 가겠다는 말에 호기심과 전율이 동시에 들었다. 이렇게 용기 내서 도전해 보고 싶은 캐릭터가 생길 때 작품을 하게 되고, 그 방식으로 지금까지 발버둥 쳐 왔다. (웃음)”

한편, ‘암살자(들)’은 모두가 목격했지만 침묵이 강요된 시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며 그날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사건의 조각을 하나씩 짚어가고 관객 각자의 시선에서 곱씹어가며 74년 그날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경험이 특별한 영화다.

글: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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