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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너머의 인간을 탐구한 거장, 안판석 감독을 떠나보내며

최재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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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판석 감독 (1961. 11. 11 ~ 2026. 8. 12)

씨네21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넓혀온 거장 안판석 감독이 뇌출혈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5세. 현실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특유의 서정적 미장센으로 안방극장에 깊은 울림을 남겼던 연출가의 비보에 연예·방송계는 물론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시청자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1987년 MBC 프로듀서로 입사하며 연출의 길에 들어선 고인은 단막극과 주말극, 옴니버스 드라마 등을 거치며 내공을 쌓았다. 안판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분기점은 2007년 연출한 MBC 드라마 ‘하얀거탑’이었다. 기존 한국 메디컬 드라마가 밟아온 전형적인 상투성을 깨부수고, 병원이라는 권력 집단 내부의 욕망과 정치, 인간 군상의 이면을 치밀하게 해부해 냈다. 멜로나 감성적 신파를 배제하고 오직 서사의 힘과 인물 간의 긴장감만으로 몰입도를 극대화한 ‘하얀거탑’은 한국 리메이크 드라마의 최고 명작이자 사회파 드라마의 이정표로 남아있다.

tvN

안감독의 연출 철학은 사회적 시스템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정성주 작가와 합을 맞춘 JTBC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 SBS ‘풍문으로 들었소'(2015) 등은 대한민국 중산층과 상류층의 허위의식, 사교육 광풍, 부와 권력의 세습을 서늘한 위트와 풍자로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특히 ‘밀회’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예술적 메타포 속에 파멸적 사랑과 계급적 환멸을 담아내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연출상을 받는 등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동시에 받았다.

이후 고인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봄밤'(2019), ‘졸업'(2024)으로 이어지는 감성 멜로 연작을 통해 독보적인 연출 세계를 완성했다. 안판석 표 멜로는 인위적인 조명과 자극적인 연출을 배제한 채, 현장음을 살린 정적과 자연광을 활용한 인물 중심의 숏으로 일상의 미세한 기류를 포착해 냈다. 남녀 간의 사랑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3040세대의 직장 문제, 가부장적 압박, 현실적 번민을 사실감 있게 담아내며 드라마라는 매체가 선사할 수 있는 정서적 깊이를 극대화했다.

JTBC ‘협상의 기술’의 이제훈 배우와 함께 (출처:JTBC)

그의 앵글 안에서 인물들은 결코 과장되거나 단편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비스듬히 들여다보듯 배치하는 특유의 관찰자적 시점은 시청자로 하여금 극 중 인물의 삶을 훔쳐보는 듯한 리얼리티를 선사했고, 대사 사이의 침묵마저 서사로 만드는 연출력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드라마 장인’으로 위치시켰다.

평생을 렌즈 너머의 삶과 인간 본질을 직시하는 데 바쳤던 안판석 감독. 그가 유작으로 남긴 드라마 ‘연애박사’를 끝으로 거장의 카메라는 멈췄지만, 그가 구축해 놓은 명작들과 화면을 가득 채웠던 묵직한 질문들은 한국 방송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끊임없이 인간을 탐구하고 시대를 고뇌했던 거장의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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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필 기자
최재필 기자
damovie20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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