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은 CG와 AI 기술의 발달로 상상 속 모든 장면을 스크린에 손쉽게 구현한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이 없던 1960년대, 인간의 수작업과 자본만으로 엄청난 규모와 세트 예술성을 보여준 대작이 있다.

바로 1963년작 ‘클레오파트라’다. 당대 할리우드 시각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 이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제작 과정의 전대미문 악재들로 인해 영화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뻔했다.

시작은 비극이었다. 당초 200만 달러 규모로 기획됐으나 판이 커지며 영국 런던에 초대형 야외 세트를 짓고 수천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다.

하지만 런던 특유의 지독한 안개와 기상 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수개월간 야외 촬영이 불가능해졌고 건진 필름은 단 10분 분량이었다.
짧은 장면을 위해 무려 700만 달러를 날린 채 결국 런던 세트를 완전히 폐기해야 했다.

설상가상 주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폐렴에 걸려 기관 절제 수술을 받으며 촬영이 전면 중단됐다.
제작사는 매일 엄청난 대기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제작진은 이탈리아 로마에 새 세트장을 지었으나 감독이 자진 하차했다.
후임 조셉 L. 맨키위즈 감독은 전임자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대본을 쓰는 살인적인 강행군을 이어갔다.

여기에 가정이 있던 주연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의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 두 사람의 공개 열애에 바티칸 교황청이 비난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대중의 공분이 컸다.

결국 순수 촬영 2년 반, 전체 제작에 5년이 걸리며 최종 제작비는 초기 예산의 20배인 4,400만 달러(현재 가치 약 4억 달러)까지 폭등해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영화는 1963년 북미 박스오피스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총매출 7,100만 달러로 대성공을 거둔 듯 보였으나, 극장과 수익을 나누고 나니 워낙 막대한 예산 탓에 극심한 적자를 기록했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배급사 20세기 폭스는 파산 위기에 몰렸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LA의 스튜디오 부지를 매각했다. 이 땅에 새로 조성된 비즈니스 지구가 바로 지금의 LA 명소 ‘센추리 시티’다.

다행히 개봉 4년 뒤인 1967년, TV 방영권을 최고가에 판매하는 등 부가 수익이 누적되면서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비록 최종 제작비는 건졌으나, ‘클레오파트라’는 세트 예술성을 증명함과 동시에 영화 한 편이 거대 스튜디오와 할리우드 전체를 통째로 붕괴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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