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영화의 바이블로 꼽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명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는 전 세계 영화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 수많은 전투 장면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후반부 라멜 마을 방어전에서 펼쳐지는 처절한 육탄전은 전쟁의 혼돈과 가혹함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 강렬한 장면이 철저히 계산된 각본이 아닌, 촬영장 속 뜻밖의 소품 고장과 배우들의 본능적인 순발력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문제의 장면은 극 중 호바스 중사(톰 시즈모어)가 건물 모퉁이를 돌다 독일군 병사와 일촉즉발로 마주치는 대목이다.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 순간, 두 사람의 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먹통이 되어 격발되지 않았다.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구형 소품 총기와 공포탄을 사용하다 보니 촬영 중 빈번하게 발생하던 기능 고장이 하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진 것이다.

일반적인 촬영장이라면 NG가 나고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졌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장은 그대로 흘러갔다. 여기에는 스필버그 감독의 독특한 연출 철학이 배경에 있었다.
평소 생생한 현장감을 중시하던 스필버그 감독은 촬영 전 배우들에게 “전투 중 장비가 고장 나더라도 연기를 멈추지 마라.

실제 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듯, 본능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라”고 주문한 상태였다.
감독의 지침을 기억하고 있던 톰 시즈모어는 당황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유일한 무기였던 자신의 헬멧을 벗어 던져 독일군의 안면을 가격했다.

이에 맞은 독일군 배역의 스턴트 배우 역시 연기를 끊지 않고 자신의 헬멧을 벗어 던지며 맞대응하는 완벽한 리액션을 선보였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피어난 기묘하고도 처절한 헬멧 투척 육탄전은 이렇게 완성됐다.

모니터로 이를 지켜본 스필버그 감독은 가공되지 않은 자발적 혼돈과 리얼함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 돌발 장면을 편집 없이 최종 본에 그대로 삽입했다.
기술적 결함이라는 최악의 돌발 변수를 배우와 감독의 예술적 본능으로 돌파하여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장면’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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