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어둡고 진지한 히어로물’의 시초이자 전설적인 명작으로 평가받는 1989년작 영화 ‘배트맨’.
팀 버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제작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격렬한 반대와 조롱에 직면했던 작품이었다.

그 중심에는 주연 배우로 낙점된 ‘마이클 키튼’이 있었다. 1988년, 워너 브라더스 본사는 마이클 키튼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분노한 전국의 배트맨 팬들이 보낸 항의와 살해 협박 편지만 무려 5만 통이 넘게 쏟아졌다.
팬들은 코믹스 컨벤션 행사장 등에서 홍보물을 찢으며 단체 폭동 직전의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심지어 경제 정론지인 월스트리트 저널(WSJ)마저도 “워너 브라더스가 코미디 배우를 기용해 수백만 달러짜리 대작을 망치려 한다”라며 이례적으로 1면 기사를 통해 캐스팅을 정면 비판했고, 이 여파로 제작사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폭락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팬들이 이토록 분노한 이유는 마이클 키튼의 기존 이미지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미스터 맘’, ‘비틀쥬스’ 등으로 이름을 알린 ‘코미디 전문 배우’였다.
원작 코믹스 속 브루스 웨인의 다부진 체격, 짙은 머리숱과는 거리가 멀었고, 체구 또한 왜소했기에 팬들은 영화가 1960년대처럼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물로 전락할 것이라 확신했다.

엄청난 비난과 조롱 속에서 마이클 키튼이 선택한 것은 정면 돌파였다. 그는 배트맨 수트를 입은 상태에서 고뇌하는 영웅의 내면을 완벽히 시각화했다.
특히 영화 역사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은 그의 과감한 ‘애드립’에서 탄생했다. 각본상 어두운 옥상에서 범죄자를 붙잡고 “나는 밤의 복수자다”라는 길고 진부한 대사를 뱉기로 되어 있었으나, 키튼은 현장에서 캐릭터의 묵직함을 살리기 위해 대사를 과감히 깎아냈다.

그리고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짧게 한 마디를 던졌다. 바로 “I’m Batman(나는 배트맨이다)”이었다.
마이클 키튼은 상대방이 목소리만으로 자신을 브루스 웨인이라고 알아채지 못하도록, 배트맨 수트를 입었을 때 목소리를 낮게 변조하는 ‘뱃-보이스(Bat-voice)’를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기도 했다.

극장에 울려 퍼진 그의 깊고 냉소적인 목소리와 짧고 강렬한 한 마디는 5만 명의 안티팬들을 단숨에 열광적인 지지자로 돌변시켰다.
조롱을 열광으로 바꾼 마이클 키튼과 전설이 된 잭 니콜슨의 조커가 결합한 이 작품은 히어로 영화의 패러다임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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