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는 유토피아 백화점에서 일하는 세 남녀가 사랑을 계기로 청춘과 행복을 그려나가는 멜로드라마다. 각기 다른 상처를 품었던 세 인물이 어둡기만 했던 막막함 속에서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80년대 배경을 현재로 옮겨 온 노스탤지어가 짙게 깔린다. 제목 파반느는 왈츠보다 느린 춤곡을 뜻한다. 영화의 분위기도 파반느처럼 서정적이고 몽환적이다. 빠르게 변하고 휘발되는 시대에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청춘에게 위로를 전하는 따스한 응원이 전해진다.
25일 종로구의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에게 스물여섯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영한 태도가 전해졌다. 아역으로 데뷔해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존재감을 각인하며, <설국열차>로 할리우드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오피스>로 성공적인 성인 배우로 변신을 마친 그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유관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자영,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 등 당당하고 꿋꿋한 한국의 여성 얼굴을 그려왔다.
영화 <파반느>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보다 앞서 준비한 작품으로 이종필 감독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꾸준히 자기 길을 걸은 발자취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활자 속 못생긴 이미지의 ‘그녀’를 불편한 시선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어든 ‘미정’으로 만들어내기까지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첫 멜로 10년 가까이 기다린 이유
-<파반느>의 처음부터 함께 했다. 10 년이 되어가는데 다른 작품을 거절하면서까지 기다렸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첫 멜로 영화로 <파반느>를 선보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종필 감독님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후 <파반느>로 재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017년부터 만나왔다. 극 중에서 ‘영화는 사랑 영화’라는 대사처럼 멜로 영화를 좋아한 이유였다. 원작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였기 때문에 사랑이란 개념을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멜로 영화를 한다면 캐릭터가 혼자 있을 때 씩씩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막연함을 미정으로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
-10kg 증량하고 어둡게 꾸민 파격 변신이 도전 같아 보인다.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쓴 부분은.
“첫 영화부터 하수구에 빠지는 특수 분장도 해봤기 때문에 크게 이질감은 없었다. 제가 중학생일 때부터 알던 송종희 분장 감독님을 그저 믿고 의지했다. 조금만 설명하자면.. (웃음) 저와는 <괴물>에서 만났다. <올드보이>의 오대수 헤어스타일 처음 만들었고, <은교>의 노인 분장, <마스크걸>의 주오남 분장을 했던 분장 대가다. 그리고 최세현 의상 감독님의 터치에도 감동했다. 직업으로 인해 외적으로 보이는 저의 장단점을 잘 알고 표현해 주었다.
미정을 오래 준비한 만큼 다양한 버전을 다양한 거쳐 왔다. 파격 변신,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자는 시각도 있었다. 그때 원작을 다시 읽어 봤고, 최종 버전을 준비하며 소설 속에 사라진 부분이나 새로운 결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때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눈빛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고, 닫힌 마음을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서 임했다.”
-원작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새롭게 해석한 부분이 있다면.
“영화는 외형적인 조건을 규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마음을 닫고 살아가던 사람이 처음으로 한 줄기 빛을 받으며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미정을 대표하는 장면은 편지 내레이션이다. 얼굴은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미정을 보여주는 데, 저는 편지 속 메시지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미정이 본인의 실제 성격을 투영한 캐릭터란 말도 포함인가.
“근래 몇 년 동안 결핍은 있지만 자존감 높고 당당하며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해 왔었다. 사실 내면에는 자신감도 부족하고 나약해서 들키기 싫은 후미진 구석이 있었는데, 그걸 숨기고 착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정은 어두운 저와 다시 마주쳐야만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슴 아팠지만 꺼내 두려 노력했다.”
-미정의 외모가 점차 밝아지는 변화가 인상적이다.
“<우아한 거짓말>, <한국이 싫어서>에 이어 원작 소설 작품만 세 번째더라. 활자로 접할 때와 시각화할 때 차이를 배우로서는 한 발 떨어져서 고민하게 된다. 명암의 구현을 영화로는 할 수 있어서 콘티 작업할 때부터 미정에게는 빛이 닿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조명 감독님이 미정의 주변까지 환해지는 빛 조절을 해주셨다.”
-하지만 미정은 또다시 숨어 버린다. 경록의 집 앞에서 ‘라면 먹고 싶다는 말’을 한 후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미정은 서서히 어둠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 거다. 미정이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에 왜곡된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내면이 바뀌었을 것 같았다. 미정의 집에는 애초에 거울이 없었을 것이고, 급히 밥상을 펴고 의도와 상관없이 옷장 속에 달린 거울을 보며 화장했을 것 같았다. 경록과 멘션 앞에서 헤어질 때도 긴 편지를 마음속으로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장미멘션 101호가 호랑이 이름 같다고 한 말도 주소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다. 혼자만의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했다.”
여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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